이번 주 최민서 인턴기자가 책과 전시를 소개합니다. 병렬독서에 이어 병렬감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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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연 외,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 & 박영숙 개인전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
“자신의 이야기를 단어로든 이미지로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다. 그 자체로 이미 반란이다.”_리베카 솔닛(2015)
책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병렬독서’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참고로 저는 지독한 병렬독서파인데요. 한 권을 완독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여러 권을 겹쳐 읽을 때 해상도가 선명해지는 느낌이 좋아서 병렬독서를 즐기는 편입니다. 요즘은 책뿐만 아니라 영화와 책을 겹쳐서 보기도 해요. 이번 레터에서는 겹쳐 보기 좋은 책과 전시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하며 반란을 일으키는 ‘마녀’의 서사가 담겨있습니다.
21세기의 마녀사냥이라고 하면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2016년 게임업계에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의사 표현을 한 여성 성우가 교체된 사건입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아래 침묵해 온 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낙인찍어 이들을 마녀라 칭했습니다. 마녀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에게 붙는 이름이기도 했으니까요. 잘났거나 튀는 여자들은 이상한 여자로 분류되는 일이 잦았던 것처럼요.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은 이러한 마녀의 서사를 다룹니다.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묻는 동시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마녀의 이름을 다시 불러냅니다. 여성을 지목하고 축출하는 단어로서의 마녀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정체성으로서 마녀를 규정해 갑니다.
책은 여성 평론가 20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써내려간 비평과 에세이를 모은 앤솔로지입니다. 소설, 시, 드라마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글과 여성의 삶과 노동, 가족, 섹슈얼리티 등을 사유하는 텍스트들이 교차됩니다. 다양한 마녀의 형상을 그리는 ‘마녀를 위한 변론’에서부터 여성의 광기를 다룬 ‘미친년들의 이야기’, 가정 내 여성의 서사를 탐색한 ‘집안의 마녀들’, 다채로운 여성 서사에 대한 ‘반란의 정치’까지. 2026년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담론과 동시대 평론가들의 여성적 글쓰기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의 언어를 공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개인적인 층위로 옮기는 시선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자의 내장에 대해 말하기”라는 부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그동안 꺼내지 못한 여성들의 깊숙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내장을 밖으로 꺼내는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페미니즘이 더이상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시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는 사진작가 박영숙의 별세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개인전입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박영숙 작가의 작업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옷을 풀어 헤친 채 웃고 있는 여성, 베개를 안고 허공을 보고 있는 여성. 이성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사회 안에서, 사진 속 여성들은 정상성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사회가 붙인 이름대로라면, 이들은 미친년이거나 마녀인 것이죠.
박영숙은 “특정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규정된 역할과 책임을 강요하는 관습”에 부당함을 느꼈고, 이들의 이름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마녀라고 낙인찍는다면 기꺼이 마녀가 되는 것을 택한다는 선언인 것이죠. “여성이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 최초의 시도”이기도 한 박영숙의 작업은 여성들에게 언어를 부여하고 그들이 대상이 아닌 주체로 존재하게 했습니다.
3층에 있는 흑백 콜라주 작품 <마녀> 하단에는 “중세, ‘마녀사냥’에 충격받아 페미니스트 되다”라는 손글씨가 적혀있는데요. 박영숙 작가는 마녀사냥의 역사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바라본 뒤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해나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작업이 1960년에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박영숙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마녀라는 이름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뒤집는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실낱같은 빛 덕분에 살아온 여성 후배들이 보내는 추도사이자 헌사”이기도 한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은 이러한 선행 작업 위에서 더 다양한 마녀의 형상을 펼쳐보입니다. 박영숙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비슷한 상황 위에 서 있기 때문 아닐까요.
전시는 4월 18일까지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이어집니다. 책과 전시를 겹쳐보며 여성들이 서로 다른 시공간을 넘어 공동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