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편집국도 비상계엄 이후 정국 관련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합니다. 그 영향으로 매주 플랫 레터를 전하는 김정화 기자가 당분간 사회부로 파견을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분간 플랫 레터 소식을 전하려고 해요. 저는 경향신문 젠더데스크 겸 플랫팀장 임아영이라고 합니다.

12일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며 야당을 비난하고 자신의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담화를 내놨습니다. 극우 유튜버가 할 만한 주장을 대통령의 목소리로 듣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입주자 여러분도 저처럼 매일매일 혼란과 분노와 좌절을 번갈아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아이를 위해 들었던 적금을 깨서 45인승 대형버스🚌를 빌려 ‘윤석열 탄핵 촛불에 참가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한 키즈버스’를 마련하고 집회에 참여고 싶지만 장거리 이동이 부담스러운 노인, 환자 등을 대상으로 ‘탄핵집회 이동 지원’을 시작하는 배달라이더🏍️ 노동조합 소식을 들으면 한편 희망을 느낍니다.

이번 탄핵 집회의 상징은 ‘응원봉’이라 할 수 있겠죠. 그만큼 2030여성들에 참여 움직임에 주목하는 언론 보도도 많았는데요.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로 지난 7일 여의도 ‘탄핵 집회’ 참가자 추정 인원을 성별·연령대별로 측정해보니 20대 여성 비율이 18.9%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어 50대 남성 13.6%, 30대 여성 10.8% 순으로 비율이 높았습니다. 20~30대 여성을 합치면 29.7%로 집회 참여자 10명 중 3명꼴이었던 셈인데요.

연령대별로만 보면 50대가 23.8%로 가장 높았으나 20대가 22.1%로 큰 차이 없이 2위를 기록했습니다. 40대가 19.4%, 30대가 15.9%로 뒤를 이었고요. 성별로만 보면 여성 비율이 58.9%로 남성보다 더 많았습니다. 20대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가 20대 전체 비율과 여성 참여 비율의 상승을 견인한 셈입니다.💪

응원봉과 함께 2030 여성들의 목소리가 주목받는 건 기쁜 일이지만 한편 여성들이 얼마나 오래 사회적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성들은 늘 목소리📢를 내왔는데 그 목소리에 덜 주목했던 건 어쩌면 사회 아니었을까요?

5.18민주화운동 때도 여성들은 당시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에서 사망한 시민들의 시신 수습에 참여했습니다. 초여름 날씨에 별다른 냉동 시설도 없어 썩어가던 희생자들의 시신을 닦고 옷을 갈아입힌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성들이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의 온다>에도 이 이야기가 담겨 있죠.

그동안 5·18민주화운동은 시민군을 중심으로 한 남성들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왔었죠. 그러나 여성들도 똑같은 ‘광주 시민’으로 항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총을 든 계엄군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사용한 화염병 제작에 참여했고 밤에는 항쟁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린 ‘투사회보’를 제작했으며 낮에는 식당에서 일한 여성들도 있습니다.

방직공장에 다니던 여공들은 쉬는 시간을 쪼개 도청 앞까지 행진했습니다. 당시 일신방직에 다녔던 전삼순씨(64)는 “3교대 근무를 했었는데 쉬는 시간에 5월21일부터 3일간 인근 전남방직 노동자들과 함께 도청까지 행진을 했다”면서 “일신방직만 해도 행진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가 2000명이 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5·18 행진’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죠.

가마솥에 밥을 해 소금과 참기름을 섞어 주먹밥을 만들고 주먹밥으로 시민군에 연대했던 여성들, 광주 시내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검은 리본을 만들어 나눠주던 여성들의 모임까지... 여성들은 늘 광장에 있었습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촉발된 촛불집회 때 ‘촛불소녀’, ‘유아차(유모차) 부대’,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내 시위 이후 박근혜 탄핵 집회,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때 강남역에 모였던 여성들,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 추모공간에 가득 찬 포스트잇과 국화꽃까지.🌹

한 입주자분이 플랫에 이런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수많은 응원봉의 등장이 민주화 운동의 세대교체 또는 세대 통합처럼 보여 감격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단지 매번 응원봉을 들고 나서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를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던 사람들이, 같은 편에 서서 힘을 보탠다고, 응원봉을 들었다고 이제야 우리의 존재가 유의미하다는 듯 칭찬하는 것이라면 좀 씁쓸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감격과 감동은 우리의 존재를 낮춰 보고 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제 집회 속 여성들을 주목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연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우리 정치 안에 담아낼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탄핵은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더 중요한 발걸음은 이제부터입니다. “우린 이제 시작입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이자 소설가인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서 한강의 작품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한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받고, 취약하고, 나약하지만 또한 한 발 더 내디디고,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고, 한 장의 서류를 더 요구하며 생존자를 인터뷰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4분간의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시킨다. 이런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품고 있다. 그리고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맞서는 행위이기도 하다.”

🏆스톡홀름 콘서트홀 주변에는 교민들이 모여 “역사적 순간에 아이와 함께 이 장면을 경험하고 싶어 왔다. 2024년 계엄령이 내린 서울 거리에서도 또다른 수많은 동호가 생길 수 있었던 엄중한 시기라서 더 뜻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12·3 내란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한강 작가의 수상을 더 기쁘게 축하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한강 작가가 남긴 말을 다시 기억하려 합니다. “모든 폭력에 함께 저항합시다.”

💬가족들에게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대”라고 말했습니다. 마침 생일이었던 초등학생 아이는 “엄마, 내 생일이 계엄날이 된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생일이 유명한 날이 됐네”라고 답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계엄군이 국회에 나타나고 포고령이 발표되기 전까지는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 포고령의 한 줄의 문장을 보고서야 실감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사를 쓰는 제 일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장 회사로 계엄군이 들이닥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폭력은 ‘말’을 빼앗는 것부터 시작한다. 5·18 성폭력 피해자인 김선옥 선생님은 지난 5일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 사람들도 계엄을 경험했으니 이제 광주 사람들의 말을 다 믿겠죠?” 오랫동안 말을 빼앗긴 사람의 슬픔이 담겨 있어 저는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1980년대 신군부가 고통스러운 ‘광주의 언어’를 오래도록 앗아갔던 것처럼, 그 밤 내란 세력은 ‘포고령’으로 언어 강탈부터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SNS으로 실시간 상황을 지켜본 시민들의 움직임은 더 빨랐습니다. 국회로 모이고 계엄군에 저항하고 국회의원들이 국회 담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우면서 ‘계엄 해제 의결’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강 작가는 기자회견에서 “1980년 광주와 2024년 겨울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돼 모두가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그밤 내란 세력은 우리에게 언어를 앗아가려 했지만 우리는 지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연결한다.”

💬계엄, 내란의 시기를 지나며 혼란스럽고 우울하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을 읽으며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은 이곳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