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죽고 있다

2022. 9. 15.

🍓여자들이 죽고 있다

VOL 4 . 2022.09.2~15

여자들이 죽고 있다

님, 오랜만입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저는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왔습니다. 사실 지난호에서 미리 휴재 공재를 드렸어야 하는데, 9일부터 추석 연휴인 걸 깜빡했어요. 혹시라도 기다리셨던 분이 계신다면, 초보 뉴스레터 운영자의 실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뤄보려 해요. 2022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죽음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4일. 순찰을 돌던 역무원 A씨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해자는 A씨의 입사 동기 B씨였습니다. B씨는 입사 다음해인 2019년부터 3년간 A씨를 스토킹해왔습니다. 2020년엔 A씨를 불법촬영하고 협박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가,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불구속 상태로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수사 개시 이후 B씨를 직위 해제했고요.

하지만 이후로도 B씨의 스토킹은 계속됐습니다. A씨는 지난 1월 B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합니다. 2차 고소에서는 경찰도 구속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어요. 지속적인 스토킹, 불법촬영과 협박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질 '시그널'이 충분했는데도요. 회사의 미흡한 보호조치, 경찰과 법원의 방관에도 꿋꿋이 일터를 지켰던 A씨는 바로 그 일터에서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B씨의 재판 선고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연락을 피하는 전 여자친구와 그의 여동생, 모친까지 살해한 노원구 김태현 사건, 서울로 주거지까지 옮기고 6번이나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중구 김병찬 사건... 비슷한 사건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올 상반기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1만4271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무려 22년간의 투쟁 끝에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됐지만,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은 꾸준합니다.

3명 중 1명은 여성 폭력 피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여성 7000명 중 2446명(34.9%)은 여성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여성 3명 중 1명꼴입니다. 이중 가해자가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 연인인 경우는 약 절반(46.0%)에 달했습니다. 여성 폭력 실태조사 실시를 법제화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시행(2019년) 이후 처음 나온 공식 통계입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성 폭력'이라는 사안의 본질을 '최선을 다해' 외면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젠더팀 보도에 따르면 여가부는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를 진행하고도 보도 자료를 배포하거나, 결과 설명하는 자리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법 규정에 따라, 여가부 홈페이지 정책자료 게시판에 올린 것이 전부였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여당의 엄포에 여가부가 눈치를 보고있다고밖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제2의 n번방'은 돌아온 적이 없다

지난달 말에는 이른바 '제2의 n번방' 사건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제2의 n번방'은 다수의 미성년자를 착취한 가해자 ‘엘’(가명)의 범행을 두고 언론이 임의로 붙인 표현입니다. 이번 사건도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에 의해 처음 보도되었는데, 피해자는 최대 10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2, 제3의 n번방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n번방은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죠.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현주소를 취재한 경향신문 사건팀에 따르면,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불법 공유하는 SNS 대화방은 지금도 동시 접속자가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화방 운영자들은 "n번방처럼 그런 방은 절대 아니다"면서도 '폭파'와 '재개설'을 반복하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고요.

조주빈('박사방' 운영자) 징역 42년, 문형욱('n번방' 운영자) 징역 34년. '주범'들의 '중한' 처벌은 사건은 해결된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바로 어제인 14일, 박사방 유료 회원 2명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조주빈 지시에 따라 성착취물 제작에 가담하고, 다량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해 범행 자체가 가볍지 않다”면서도 “가담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성착취물을 시청하고 소지한 바로 그 방관자들이야말로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근본 원인인데도요.

'여성 폭력'을 막으라는 요구가 '젠더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둔갑하는 백래시의 시대. 후폭풍은 오롯이 피해자들의 몫입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에 접수되는 피해지원 요청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엘'로부터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 역시 디성센터를 가장 먼저 찾은 것으로 확인됐죠.

하지만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센터 증설 관련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디성센터에서는 40명의 직원이 약 16만 건의 성착취물을 삭제했습니다. 직원 한 명이 약 4300건을 삭제한 셈인데, 그중 절반은 비정규직입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해온 민간단체 활동가들 역시 극심한 번아웃을 호소하며 상담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고요.

'제2n번방' 피해자가 가장 먼저 찾았던 지원센터, 내년 추가 예산 '0원'

디지털성범죄 지원 강화 외치지만, 상담·삭제 담당직원 절반 비정규직

"일부 남성들의 일탈적인 범죄다" "안타깝지만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비슷한 죽음이 수도 없이 반복되지만, 사안을 '개인의 비극'으로 축소하려는 목소리는 또다시 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여성 폭력 가해자들이 엄한 처벌을 받았다면,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단단했다면,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요?

여성들의 반복되는 죽음을 '젠더 폭력'이라고 명명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제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감히 올리기에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토양이 썩었다면 나무 한두 개 도려내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경향신문은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가해자 ‘엘’에 대해 아시거나,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제보하실 내용이 있으면 play@khan.kr로 부탁드립니다.

플랫팀 ｜ 심윤지 기자

갈팡질팡 페미니스트

광고·협업 문의는 flat@khan.kr

“우리는 n번방과 다르다”는 공범들, 지옥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130개의 n번방 대화방에는 26만명(중복 추산)에 이르는 '공범들'이 있었습니다. 남겨진 공범들은 지금도 디지털 공간에 남아 또 다른 'n번방'을 만들어내고 있죠. 경향신문 사건팀이 시작한 <n번방, 남겨진 공범들> 시리즈 첫화는 디지털 성착취의 실태를 다뤘습니다.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SNS에서 미성년자들의 약점을 잡아 성착취 영상 제작을 강요하는 수법은 그대로였습니다. 유포 방식이나 수익 구조는 오히려 진화했습니다. 그런데도 대화방 운영자나 소지자들은 "우리는 n번방과는 다르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들의 범죄를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기사 보러가기

100일간의 '이예람 특검' 수사 결과 발표… 유가족 "부족하지만 이제 시작"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을 수사하는 안미영 특별검사팀이 10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중사 사망 481일 만에 사건 초기 '부실 수사'와 '2차 가해'로 일관했던 군검찰 관계자 8명을 재판에 넘긴 것인데요. 특검팀은 지난 13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군의 조직적인 2차 가해가 이 중사의 사망 원인"이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딸의 장례도 미루고 유가족들은 "군 부실 수사의 실체적 진실에 이르지는 못했다"면서도 "이제부터 시작이다"며 수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플랫팀이 종합했습니다.

기사 보러가기

현장체험학습 유감

무거운 소식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글을 소개해요.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의 칼럼인데요. 요즘 초등학교엔 소풍이 없다고 해요. 대신 현장체험학습(현체)가 있는데, 내용은 소풍에 가깝다고 합니다. 2학기 현체 신청서를 내미는 딸의 표정이 심란했습니다. "엄마 동물원이래…" 동물권에 관심이 많고 채식을 지향 지향하는 딸의 마음은 복잡해졌습니다. 동물들이 불쌍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 복잡함에 정면으로 직면하고 딜레마를 해결해가는 모녀의 대화가 정말 좋았어요.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 있구나, 다시금 깨닫게 해줬거든요. 이번주 제 '최애' 칼럼입니다.

기사 보러가기

놓치기 쉬운 젠더 뉴스를 '세줄 요약' 해드립니다.

😥 전세계 인구 150명 중 1명(5000만명)은 강제노동과 강제결혼에 시달리며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분석이 나왔습니다. 강제 결혼한 2200만여명 중 3분의 2는 여성, 결혼 당시 이나이는 대부분 15세 미만이었다고 해요.
▶ 국제노동기구 "전세계 인구 150명 중 1명은 '현대판 노예'"
🤔 성접대 수수 의혹을 받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오는 16일 경찰 출석을 앞두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 전 대표의 성접대 정황 증거를 여럿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소시효(5년)이 이미 지나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준석, 성접대 의혹 처벌 어렵다는데···증거인멸·무고죄 기소 가능성 따져보니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 돌아갔다. 2020년 <노매드랜드>(클로이 자오) 2021년 <레벤느망>(오드리 디완)에 이어 3년 연속 여성 감독 수상입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플랫은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장면

최근 몇 년 새 명절 풍경이 빠르게 바뀐 느낌이에요. 추석 연휴 직전 플랫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구독자분들의 명절 계획을 여쭤봤는데요.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가기" "밀린 잠과 휴식" 등 대체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응답이 '대세'였어요. (물론 "연애 왜 안하냐는 대국민 질문 답변 준비하기" "화참기 챌린지"를 해야 한다는 해학 가득 답변도 있었지만요.🤣) 기혼자인 한 팔로워님은 "처음으로 시가 친정 모두 안가기로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미용실 예약했다"는 결단을 내리셨다고 해요.

지난 5일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차례상 음식을 10가지 내외로 간소화하는 '차례상 표준안 방안'을 제시했어요. 며느리의 노동력을 착취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례상을 차리는 건 전통 유교 예법에도 어긋난다는 '팩트체크'도 나왔고요. 긍정적인 변화지만 명절의 모순에서 '며느리의 전부치기 노동'은 극히 일부일 뿐인데... 하는 삐죽한 마음도 들었어요. 결혼 한 여성 뿐 아니라 안한 여성들도, 명절마다 찾아오는 가부장제의 그림자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으니까요.

페미니스트다운 명절 나기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사실 어떤 명절을 보낼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가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족의 의미가 넓어지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명절 풍경은 더욱 다채로워지겠죠.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낡은 질서를 바꾸기 위해 싸우거나, 설득하거나, 나를 지키기 위해 회피하거나... 여러분의 선택도 다양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래 '플랫에 의견보내기' 버튼을 통해 명절에 대한 여러분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주세요.

독자들이 플랫팀에 남겨주신 이야기를 전해요.

🍪 이 논의가 아이돌 당사자에게 도움이 될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소속사가 좀 더 아이돌의 주체성을 존중해주고, 동시에 '제작 의도'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곡과 뮤비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네요.

🍪 젊고, 날씬하고, 못난 부분이 없어야만 가치있다는 생각에 가장 크게 힘을 보태는 게 여성 아이돌이라고 생각해요.

🍪 저는 14, 15살 친구들이 끊임없이 데뷔하고 '갓기'로 소비되는 것 자체에 문제의식이 있어요.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성인 여성과 다름 없는 화장을 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하는게 정상인가 싶어요. 성인도 버티기 힘든 연예계 생활에, 회사가 과연 얼마나 보호막이 되어줄지..

🍪 '쿠키'라는 단어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성적인 맥락이 존재하는 노래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서 입장문을 쓰는 건 결국 이번 논란의 요점 자체를 모르는 것에 지나지 않고요..(...) 거대 기획사들이 바보가 아닌 거 알고 있고, 그래서 소비자의 비판적인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케이팝 산업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고요.

🍪 사실 이번 쿠키 논쟁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른척 해왔던 이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도 보는데, 정작 제작자 측에서는 이 불편한 진실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고, 성적인 뉘앙스를 읽어내는 대중들이 이상한 거라는 식으로 대응하니까 황당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실컷 그런 식으로 장사해와놓고....

💌Flat's Comment!

저번 레터 From.Flat에서는 뉴진스의 타이틀곡 '쿠키'를 둘러싼 미성년자 성상품화 논란을 다뤘는데요. 구독자 여러분들의 진지한 피드백이 어느 때보다 많았던 회차였습니다. 레터를 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었는데, 구독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보면서 저도 제 나름의 생각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게 됐어요.

여러 분들이 지적해주신대로 "K팝이 아티스트를 철저하게 성상품화하는 산업"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10대,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지,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지와 별개로요. K팝을 소비하든 하지 않든, 이 산업이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갈수 있게 하는 비판자의 존재가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레터에는 구독자분들이 남겨주신 의견의 일부만 발췌했는데요. 전문을 보고싶으신 분들을 위해 아래 패들릿 링크를 첨부합니다. 댓글과 좋아요를 남기셔도 좋고요! 함께 레터를 만들어주시는 구독자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의견 보러 가기